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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진칼럼] 미국 떼강도 사건과 기후위기
2023-10-13

[전하진칼럼] 미국 떼강도 사건과 기후위기

 
 

지난 4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시내 중심가에서 100여명의 청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약탈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애플 매장에서 아이패드와 같은 고가제품을 들고 나오는 가하면 주류 상점에서는 양주를 훔치기도 했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범행을 계획했고 범행 중에는 이를 자랑하듯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등 큰 충격을 주었다. TV보도를 보면서 마치 무슨 게임하듯이 약탈을 자행하는 모습이 그냥 놀이를 즐기는 청년들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섬뜩했다.

이러한 떼강도 사건은 LA, 일리노이, 애틀란타, 마이애미 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떼강도뿐만 아니라 좀도둑도 급증하고 있어 월마트, 타깃 등 대형 유통매장은 물론이고, 백화점, 쇼핑몰, 편의점 등이 점점 더 많은 매장을 폐점하는 추세다. 이런 결정은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인한 매출 감소도 원인이지만 이 같은 절도로 인한 피해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원인이라고 한다.

소비심리 위축은 코로나19 이후로 경기침체에 따른 실업률 증가, 빈곤층 확대 등으로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지난 해 40여 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거치면서 실질 소득이 줄었다고 밝혔다. 또한 실질 빈곤율도 전년도 7.8%에서 12.4%로 크게 뛰어 올랐다. 빈곤 아동의 비율은 5.2%에서 12.4%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와 같은 실질적인 빈곤율의 증가가 범죄가능성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치 플래시몹을 하듯 계획된 범죄에 불특정 다수가 동참한다는 사실은 과거와는 다른 형태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 쉽게 수백 명이 떼강도로 돌변할 수 있는 사회적 병리현상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아주 쉽게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경제적 어려움이나 빈곤층의 증가 등으로 범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공권력이 이를 통제하면서 사회가 안정을 되찾고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게 일반적인 시나리오다. 그래서 범죄가 많은 특정지역에 공권력이 집중 배치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 떼강도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런 공권력에 의한 질서회복이 앞으로 매우 어려워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방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은 점점 더 많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일단 이런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의식이 별로 없어 보인다. 경제적으로 선택지가 별로 없는 극단의 상황을 겪는 이들이 많아진 탓일 게다. 그러나 이런 자들만의 범죄라면 잠재 가담자 수가 통제될 만 한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기후위기로 인한 절망감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게 된다면 아마도 잠재적 범죄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질 텐데 이때 과연 공권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인간이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지구온도 상승 마지노선이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로 막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합의를 도출하고, 2100년에 2도로 억제하고, 가능한 1.5도를 넘지 않게 하자고 악속 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1.5도 상승은 지금 속도라면 2030년이면 도달할 것 같고 2100년이면 3도 내지 4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류는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현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고 이런 현상은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빼앗아 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을 물려준 부모세대에 대한 분노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래에 대한 절망감은 범죄자나 이를 막는 경찰이나 분노의 대상인 부모세대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일하게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사회가 절망감에 휩싸여 있을 때 이런 범죄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기름에 불붙는 격이 될 것이다. 가담자는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질 것이고 세계 도처에서 모방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 공권력을 집행하는 자들 또한 그들과 비슷한 절망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 때는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수년 안에 닥칠 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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